기네스
9,000년 임대 계약
9,000년 임대 계약 — 역사상 가장 대담한 서명
1759년 12월 31일, 아일랜드 더블린 외곽의 한 낡은 양조장에서 역사상 가장 대담한 계약이 체결됩니다. 당시 34세의 청년 양조업자 아서 기네스(Arthur Guinness)는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St. James's Gate) 양조장을 임차하는 계약서에 서명합니다. 조건은 연간 임차료 45파운드. 임대 기간은 9,000년. 이것은 법적으로 완전히 유효한 계약이었고, 만료일은 서기 10,759년입니다. 아서 기네스는 자신이 만들 맥주에 대해 그만큼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당시 더블린은 주류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비교적 싸고 독한 진과 위스키가 하층민들 사이에서 유행하며 알코올 중독과 사회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아서는 "맥주가 독주보다 건강에 낫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고, 흑맥주야말로 아일랜드 서민들이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음료라고 믿었습니다. 그의 확신은 결국 옳았습니다.
스타우트 포터의 탄생
기네스가 만드는 술의 정체성은 '스타우트 포터(Stout Porter)'입니다. 18세기 영국 런던에서 노동자(porter)들이 즐겨 마시던 어두운 흑맥주에서 발전한 스타일입니다. 기네스는 이것을 아일랜드식으로 재해석했습니다. 핵심은 '로스팅(roasting)', 즉 볶은 보리입니다. 일반 맥주보다 훨씬 강하게 볶은 보리를 사용하면 진한 커피·초콜릿 향이 납니다. 여기에 아일랜드 리피(Liffey) 강의 물이 더해져 특유의 부드러운 질감이 만들어졌습니다. 기네스는 흑맥주의 표준을 세계적으로 확립한 브랜드입니다.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의 확장
기네스의 성장은 놀라웠습니다. 처음 작은 양조장에서 시작해, 19세기 중반이 되면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는 세계 최대의 양조장 중 하나가 됩니다. 전체 면적이 약 64에이커(약 26만㎡)에 달했고, 양조장 내부에는 자체 철도 노선, 병원, 직원 주택, 심지어 소방서까지 있었습니다. 기네스는 더블린 경제의 심장이었고, 아일랜드 최대 고용주였습니다. 1930년대에 기네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 중 하나가 됩니다.
기네스 세계기록 — 술집 논쟁에서 탄생한 책
1951년 11월, 기네스 맥주회사의 전무이사 휴 비버(Sir Hugh Beaver)경은 아일랜드 남부에서 사냥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사냥 도중 총을 빗나간 황금물떼새(golden plover)를 두고 일행과 논쟁이 벌어집니다. "유럽에서 가장 빠른 게임 버드가 뭐냐?" 아무도 정답을 몰랐고, 책을 찾아봐도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비버는 그날 저녁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전 세계 술집에서 매일 밤 이런 논쟁이 벌어지겠구나. 만약 그 논쟁을 해결해줄 책이 있다면 얼마나 유용할까."
비버는 노리스·로스 맥워터(Norris and Ross McWhirter) 형제를 고용해 세계 최고·최대·최초의 기록을 모은 책을 만들게 합니다. 1955년 8월, 첫 번째 '기네스 북 오브 레코즈(Guinness Book of Records)'가 출판됩니다. 그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영국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고, 이후 전 세계 1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돼 수억 부가 팔렸습니다. 술집 논쟁에서 시작된 책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연간 출판물 중 하나가 된 것입니다.
질소 거품의 과학 — 왜 기네스 거품은 가라앉는가
기네스를 처음 따를 때 거품이 아래로 가라앉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이는 눈의 착각이 아닙니다. 기네스는 일반 맥주와 달리 이산화탄소(CO₂) 대신 질소(N₂)와 소량의 CO₂를 혼합해 사용합니다. 질소 기포는 CO₂ 기포보다 훨씬 작습니다. 이 미세한 질소 기포들이 잔 가장자리를 따라 빠르게 올라가면, 중앙의 기포들은 상대적으로 아래로 밀려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리학적으로 정확히는 가장자리 기포들이 올라가는 것이지만, 시각적으로는 중앙 기포들이 내려가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입니다. 이것이 기네스 특유의 크리미하고 치밀한 거품의 비밀입니다.
2-파트 푸어 — 119.5초의 의식
완벽한 기네스 한 잔을 만드는 공식 시간은 119.5초입니다. 먼저 깨끗하게 씻은 기네스 전용 파인트 잔을 45도로 기울여 수도꼭지에 가까이 댑니다. 맥주를 4분의 3 정도까지 따릅니다. 그런 다음 잔을 내려놓고 기다립니다. 탁한 갈색빛이 점차 짙은 흑색으로 변하면서 크리미한 거품이 위로 올라올 때까지. 이것이 '서지 앤 세틀(surge and settle)'입니다. 거품이 완전히 안정되면 잔을 다시 들어 나머지를 채웁니다. 거품이 잔 위로 살짝 돔 형태로 솟아올라야 완벽한 기네스입니다. 서두르면 기네스가 망가집니다.
9,000년 임대 계약을 맺은 한 청년의 자신감. 그 자신감이 오늘날 전 세계에서 하루에 1,000만 파인트 이상 팔리는 맥주를 만들었습니다.
🍽 페어링 추천
기네스와 생굴(oyster)의 조합은 아일랜드에서 수백 년간 검증된 전설적인 페어링입니다. 굴의 짭조름한 바다 향이 기네스의 로스팅 향을 강조하고, 크리미한 거품이 굴의 날 것의 강도를 부드럽게 감쌉니다. 훈제 체다치즈와의 공명 페어링도 훌륭합니다. 한국식으로는 감자탕, 순댓국처럼 진하고 묵직한 국물 요리와 잘 어울립니다. 기네스의 커피·초콜릿 향은 의외로 다크 초콜릿 디저트와도 환상적인 공명 페어링을 이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