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키 47

흑림에서 태어난 진

🇩🇪 독일 슈바르츠발트진(Gin)47%
몽키 47 진

흑림이라는 무대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위치한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 우리말로 '흑림(黑林)'입니다. 해발 1,500미터에 달하는 산봉우리와 울창한 전나무 숲, 맑은 계곡물, 그리고 수천 년간 쌓인 이탄층. 이 숲에서만 자라는 구름딸기(cloudberry), 블랙베리, 크랜베리 등 이름조차 낯선 야생 식물들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몽키 47은 바로 이 숲 전체를 병 속에 담은 진입니다. 이름 속에 두 개의 숫자가 숨어 있습니다. 47종의 식물 원료(botanicals)와 47%의 알코올 도수. 하지만 이 술의 진짜 이야기는 숫자가 아니라 한 영국 장교와 한 마리 원숭이로부터 시작됩니다.

전후 베를린, 무너진 동물원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베를린은 폐허가 됐습니다. 영국 공군 중령 콜린 스콧(Wing Commander Colin Scott)은 점령지 독일에 주둔하며 전후 복구 임무를 맡았습니다. 임무 중 하나는 연합군의 폭격으로 처참히 무너진 베를린 동물원을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전쟁 전 유럽 최대의 동물원이었던 베를린 동물원은 폭격 이후 거의 모든 동물을 잃었습니다. 약 4,000마리 중 91마리만이 살아남았습니다.

재건 작업 중 스콧은 홀로 살아남은 인도잿빛원숭이 한 마리를 발견합니다. 이름은 막스(Max). 어린 막스는 먹이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우리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스콧은 막스를 직접 돌보기 시작했고, 막스는 점차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전쟁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은 베를린에서 막스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안이 되는 존재가 됐습니다. 영국 군인과 독일 시민이 함께 원숭이 한 마리에게 웃음을 짓는 풍경은 그 자체로 화해의 상징이었습니다.

흑림으로 내려가다

베를린 근무가 끝난 후, 스콧은 도시를 떠나 슈바르츠발트 지역으로 이주합니다. 그는 작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면서 틈틈이 지역의 야생 식물들을 채집해 직접 진을 빚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인으로서 진(Gin)에 대한 타고난 애정이 있었던 그는, 전형적인 런던 드라이 진이 아닌 독일 흑림만의 특산 식물들을 활용한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막스도 함께 흑림으로 왔고, 게스트하우스의 마스코트가 됐습니다. 스콧은 자신이 만든 진에 막스의 이름을 따 '몽키(Monkey)'라 불렀습니다. 47종의 식물 원료, 47도의 도수. 두 개의 숫자가 훗날 이 술의 정체성이 됩니다.

잊혀진 레시피의 재발견

스콧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레시피는 수십 년간 완전히 잊혀졌습니다. 게스트하우스도 폐업했고, 막스에 대한 이야기도 지역 노인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6년, 기업가이자 진 애호가인 알렉산더 슈타인(Alexander Stein)이 슈바르츠발트를 여행하던 중 오래된 게스트하우스 창고에서 우연히 낡은 레시피 노트를 발견합니다. 노트는 황갈색으로 바랬지만 글씨는 또렷했습니다. 거기엔 47종의 식물 원료 목록과 증류 방법, 그리고 막스를 향한 짧은 헌사가 적혀 있었습니다.

슈타인은 이것을 단순한 레시피가 아니라 하나의 역사로 봤습니다. 그는 지역의 증류 전문가들, 식물학자들과 협력해 이 레시피를 현대적으로 재현하는 작업에 착수합니다. 일부 식물 원료는 흑림에서 직접 채집해야 했고, 일부는 지구 반대편에서 공수해야 했습니다. 4년에 걸친 실험과 조정 끝에 2010년, 마침내 몽키 47이 세상에 나옵니다.

47종의 식물 원료 — 숲을 병에 담다

몽키 47의 가장 큰 특징은 47종이라는 압도적인 식물 원료의 수입니다. 일반적인 진이 6~12종의 botanicals를 사용하는 것과 비교하면 거의 4~8배에 달합니다. 이 47종은 크게 세 층위로 나뉩니다. 첫째는 진의 필수 원료인 주니퍼 베리(향나무 열매)를 포함한 유럽 전통 허브들. 둘째는 슈바르츠발트 고유의 구름딸기, 블랙베리 잎, 크랜베리, 엘더베리 등 현지 채집 식물들. 셋째는 카다멈, 시나몬, 스타아니스, 생강, 라벤더, 핑크 페퍼 등 세계 각지에서 공수한 이국적인 향신료들입니다.

이 중 일부는 오직 슈바르츠발트에서만, 그것도 특정 계절에만 채집 가능합니다. 구름딸기는 8월의 짧은 시기에만 수확할 수 있어, 생산팀이 직접 숲에 들어가 손으로 따야 합니다. 이 지역성과 계절성이 몽키 47을 단순히 '독일산 진'이 아닌 '흑림을 담은 진'으로 만드는 핵심입니다.

테라코타 숙성 — 시간이 빚는 균형

몽키 47의 생산 과정에는 또 하나의 특별한 단계가 있습니다. 증류를 마친 원액을 3개월간 테라코타(terracotta, 유약을 바르지 않은 점토 도기) 용기에서 숙성시키는 것입니다. 스테인리스나 오크통 대신 테라코타를 선택한 이유는 미세한 기공(氣孔)에 있습니다. 테라코타는 극히 미세한 기공을 통해 외부 공기와 아주 조금씩 교환이 이루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거친 알코올 느낌이 부드러워지고 47종 식물들의 향이 서로 어우러져 균형을 잡습니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 올리브유와 와인을 저장하던 암포라(amphora)에서 영감을 받은 방식입니다. 현대 증류 기술에 고대의 저장 지혜를 더한 것입니다.

세상에 나오다 — 독일 진의 혁명

2010년 출시와 동시에 몽키 47은 국제 주류 대회에서 연속 최고상을 받으며 업계를 뒤흔들었습니다. "독일에서도 세계 최고의 진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고, 런던·뉴욕·도쿄의 프리미엄 바들이 앞다투어 몽키 47을 입고했습니다. 출시 10년 만에 세계 최고의 진 중 하나로 확고히 자리 잡았고, 2020년 프랑스 명품 그룹 페르노리카(Pernod Ricard)가 인수하면서 글로벌 브랜드가 됩니다. 그럼에도 생산 시설은 여전히 슈바르츠발트에 있고, 현지 식물 원료 채집 방식도 그대로입니다. 병 라벨에 그려진 원숭이는 막스를 기리는 작은 헌사입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베를린, 홀로 남겨진 원숭이 한 마리, 그리고 그 원숭이를 돌본 영국 장교의 마음. 그 마음이 흑림의 47가지 식물을 담아 병 속에 살아 있습니다.

🍽 페어링 추천

몽키 47의 복잡한 식물 향을 가장 잘 즐기는 방법은 고품질 토닉워터와의 G&T(Gin & Tonic)입니다. 토닉워터를 1:2 비율로 붓고 레몬 한 조각을 얹으면 47종 botanicals의 층위가 하나씩 열립니다. 안주는 흑림의 허브 향과 공명하는 그뤼에르 치즈나 부드러운 블루치즈가 잘 맞습니다. 훈제 연어나 그라브락스(gravlax)의 짭조름한 향도 진의 주니퍼 향과 아름다운 공명 페어링을 이룹니다. 겨울철에는 따뜻한 에그노그 베이스 칵테일에 넣어 흑림의 풍미를 더해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