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와인

보르도 vs 부르고뉴, 두 개의 왕국

🇫🇷 프랑스와인테루아르
프랑스 와인 보르도 부르고뉴

테루아르 — 프랑스 와인 철학의 핵심

프랑스 와인을 이해하는 열쇠는 단 하나, 테루아르(terroir)입니다. '땅'을 뜻하는 이 개념은 포도가 자라는 토양, 기후, 지형, 일조량, 심지어 그 땅의 미생물까지 포함한 총체적 환경을 가리킵니다. 프랑스인들은 "위대한 와인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땅에서 자라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같은 피노 누아르 품종을 심어도 부르고뉴의 어느 밭에서 자랐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와인이 됩니다.

보르도 — 블렌딩의 예술

보르도는 프랑스 남서부, 지롱드 강 어귀에 자리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산지이자, 블렌딩 와인의 성지입니다. 보르도 와인의 핵심은 단일 품종이 아닌 여러 품종의 혼합입니다.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카베르네 프랑 등을 그해의 날씨와 수확 상태에 따라 조합합니다. 이 블렌딩이야말로 와인메이커의 예술적 판단이 가장 크게 개입하는 순간입니다.

보르도는 지롱드 강을 기준으로 좌안(Left Bank)과 우안(Right Bank)으로 나뉩니다. 좌안의 메독(Médoc)은 자갈 토양에 카베르네 소비뇽 중심입니다. 타닌이 강하고 산도가 높아 장기 숙성에 유리하며, 젊을 때 거칠지만 10~20년 숙성 후 열리면 놀라운 복잡함을 드러냅니다. 우안의 포므롤(Pomerol)과 생테밀리옹(Saint-Émilion)은 점토 토양에 메를로 중심입니다. 메를로는 부드럽고 풍부한 과실미를 특징으로 하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 중 하나인 페트뤼스(Pétrus)가 이 지역 포므롤 출신입니다.

1855년, 나폴레옹 3세의 명으로 만들어진 보르도 그랑 크뤼 등급 체계는 61개 샤토를 1~5등급으로 분류했습니다. 17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등급은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무통 로칠드(Mouton Rothschild)가 1973년에 2등급에서 1등급으로 승격된 것이 유일한 변경 사례입니다.

부르고뉴 — 단일 품종의 순수함

보르도가 블렌딩의 예술이라면, 부르고뉴는 단일 품종의 순수함입니다. 부르고뉴 레드는 오직 피노 누아르, 화이트는 오직 샤르도네만 허용됩니다. 블렌딩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르고뉴 와인은 포도 품종이 아니라 밭(클리마, climat)이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같은 피노 누아르라도 로마네 콩티(Romanée-Conti) 밭에서 나온 것과 이웃 밭에서 나온 것은 가격이 수십 배 차이 납니다.

부르고뉴의 최정점은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Domaine de la Romanée-Conti, DRC)입니다. DRC의 로마네 콩티는 연간 생산량이 약 6,000~7,000병에 불과하며, 최근 빈티지의 병당 가격은 수천만 원을 넘깁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 목록의 상위권을 DRC의 여러 와인이 차지합니다.

부르고뉴 와인이 비싼 이유는 단순합니다. 좋은 밭은 한정되어 있고, 생산량은 적으며, 수요는 폭발적입니다. 특히 상속 과정에서 밭이 세분화되어 그랑 크뤼 밭 하나를 수십 명의 생산자가 나눠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같은 밭이지만 생산자마다 와인이 다릅니다.

보르도 vs 부르고뉴 — 철학의 대결

두 산지는 단순히 맛이 다른 게 아닙니다. 와인에 대한 철학 자체가 다릅니다. 보르도는 와인메이커의 개입과 판단을 중시합니다. 어떤 품종을 얼마나 섞을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예술성이 발휘됩니다. 부르고뉴는 반대입니다. 최소한의 개입으로 그 땅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와인은 만드는 것인가, 발견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보르도와 부르고뉴는 정반대의 답을 내놓습니다.

그 외 프랑스 와인 산지

프랑스에는 보르도와 부르고뉴 외에도 위대한 산지들이 있습니다. 샹파뉴(Champagne)는 세계 최고의 스파클링 와인 산지입니다. 론(Rhône) 계곡 북부는 시라(Syrah) 단일 품종으로 만드는 에르미타주(Hermitage)로 유명합니다. 알자스(Alsace)는 리슬링과 게뷔르츠트라미너로 세계 최고의 화이트 와인을 만듭니다. 루아르(Loire) 계곡의 소비뇽 블랑은 뉴질랜드 말버러 스타일의 원형이 됐습니다.

보르도는 완벽한 교향곡이고, 부르고뉴는 즉흥 재즈입니다. 어떤 음악을 좋아하느냐에 따라 어떤 와인이 더 위대한지가 달라집니다.

🍽 페어링 추천

보르도 레드(카베르네 소비뇽 베이스)는 소고기 스테이크, 양고기와 클래식 페어링입니다. 한식으로는 갈비찜, 불고기와 잘 어울립니다. 부르고뉴 레드(피노 누아르)는 타닌이 부드러워 연어, 오리고기, 버섯 요리와 탁월합니다. 된장 베이스 찌개류와도 의외로 좋은 조화를 이룹니다. 부르고뉴 화이트(샤르도네)는 크림 소스 파스타, 가리비, 참치회와 페어링하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