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와인
20개 주, 350개 품종의 나라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와인의 나라
이탈리아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다양한 와인을 생산합니다. 20개 주 모두에서 와인이 만들어지고, 공식적으로 등록된 토착 포도 품종만 350개가 넘습니다. 프랑스가 소수의 국제적 품종을 중심으로 세계를 지배했다면, 이탈리아는 이름도 낯선 수백 가지 토착 품종으로 끝없이 다양한 와인을 만들어 왔습니다. 네비올로(Nebbiolo), 산지오베제(Sangiovese), 아글리아니코(Aglianico), 코르비나(Corvina)... 이탈리아 와인의 세계는 탐험하면 탐험할수록 끝이 없습니다.
바롤로 — 와인의 왕
이탈리아에서 가장 위대한 레드 와인을 꼽으라면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피에몬테(Piemonte) 주의 바롤로(Barolo)를 꼽습니다. '와인의 왕, 왕의 와인(King of wines, Wine of kings)'이라는 별명이 있는 바롤로는 네비올로 품종으로만 만들어집니다. 네비올로는 타닌과 산도가 극도로 강해서 숙성 없이는 마시기 힘든 품종입니다. 규정상 최소 3년(리제르바는 5년) 숙성 후에야 출시할 수 있고, 위대한 바롤로는 10~20년 이상 숙성 후 진가를 드러냅니다. 젊을 때는 타닌이 입 안을 꽉 조이지만, 숙성이 되면 타르, 장미, 버섯, 트러플의 복잡하고 황홀한 향이 펼쳐집니다.
바롤로 옆 동네인 바르바레스코(Barbaresco)도 같은 네비올로로 만들지만, 바롤로보다 조금 가볍고 우아한 스타일입니다. 바롤로가 '왕'이라면 바르바레스코는 '왕비'라는 표현이 자주 쓰입니다.
슈퍼 투스칸의 반란 — 규정을 거부한 명품들
1970년대 토스카나(Toscana)에서 와인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이탈리아 와인 법규는 키안티에 산지오베제 외에 화이트 품종을 일정 비율 섞도록 의무화하고 있었습니다. 최고의 품질을 추구하던 일부 생산자들은 이 규정이 품질 향상의 걸림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1968년 마리오 인치자 델라 로케타(Mario Incisa della Rocchetta)는 카베르네 소비뇽과 카베르네 프랑만으로 와인을 만들었습니다. 이름은 사시카이아(Sassicaia). 프랑스 보르도 블렌딩 방식을 이탈리아 토스카나 땅에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이탈리아 법규상 등급을 받을 수 없어 가장 낮은 등급인 '비노 다 타볼라(Vino da Tavola, 식탁 와인)'로 분류됐습니다. 하지만 1978년 영국 와인 잡지 디켄터(Decanter)가 세계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사시카이아를 최고로 선정하자, 이 식탁 와인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뒤를 이어 안티노리(Antinori)의 티냐넬로(Tignanello, 1971)가 등장했습니다. 산지오베제에 카베르네 소비뇽을 블렌딩한, 이 역시 법규를 무시한 와인이었습니다. 이 두 와인이 '슈퍼 투스칸(Super Tuscan)'의 시작이었습니다. 규정을 거부한 와인들이 이탈리아 와인의 새로운 정점이 된 아이러니한 역사입니다.
아마로네 — 말린 포도의 마법
베네토(Veneto) 주 발폴리첼라(Valpolicella) 지역에서 만드는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Amarone della Valpolicella)는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레드 와인 중 하나입니다. 수확한 포도를 바로 발효하지 않고, 특수 선반(아파시멘토, Appassimento) 위에서 3~4개월간 말립니다. 이 과정에서 포도의 수분이 약 30~40% 증발하면서 당분, 타닌, 향미 성분이 극도로 농축됩니다. 알코올 도수가 15~17%에 달하고, 말린 체리, 다크 초콜릿, 커피, 가죽의 농밀하고 묵직한 풍미가 폭발합니다.
키안티 — 이탈리아 와인의 얼굴
전 세계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와인은 단연 키안티(Chianti)입니다. 토스카나의 산지오베제 품종으로 만드는 키안티는 산도가 높고 타닌이 있어 이탈리아 음식과 천생연분입니다. 피자, 파스타, 리소토 — 토마토 베이스의 거의 모든 이탈리아 요리와 최고의 페어링을 이룹니다. 키안티 중에서도 최상급은 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와 그란 셀레치오네(Gran Selezione)입니다.
이탈리아 와인 등급 체계
이탈리아 와인의 등급 체계는 DOC(원산지 통제 명칭)와 DOCG(원산지 통제 보증 명칭)로 나뉩니다. DOCG는 더 엄격한 규정을 적용받는 최고 등급입니다. 하지만 슈퍼 투스칸들이 보여준 것처럼, 때로는 낮은 등급의 와인이 가장 위대한 품질을 보여주는 역설이 이탈리아 와인 세계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이탈리아 와인은 완성된 교과서가 없습니다. 규정을 거부한 곳에서 명품이 태어나고, 잊혀진 품종에서 걸작이 나옵니다. 이 예측 불가능함이 이탈리아 와인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 페어링 추천
키안티와 토마토 베이스 파스타, 피자는 교과서적 페어링입니다. 산도 높은 이탈리아 레드는 토마토의 산미와 완벽하게 공명합니다. 바롤로는 트러플 요리, 브레이즈드 소꼬리,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와 함께 즐기면 최고입니다. 한식 페어링으로는 바롤로와 불고기, 키안티와 돼지갈비, 아마로네와 갈비찜이 훌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