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와인
신이 마신 술, 잊혀진 품종의 귀환
와인의 원조, 그리스
고대 그리스는 와인 문명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디오니소스(Dionysus)는 와인과 포도주의 신입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에는 와인이 수십 번 등장하며, 고대 그리스인들은 와인을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신성한 음료로 여겼습니다. 그리스 식민지가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에 자리를 잡으면서 포도 재배 문화가 유럽 전체로 전파됐습니다. 오늘날 유럽의 위대한 와인 문화는 그리스에서 시작된 씨앗에서 자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리스 와인은 20세기 내내 세계 무대에서 거의 존재감이 없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오랜 지배, 내전,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무엇보다 국제 시장이 원하는 품종(카베르네 소비뇽, 샤르도네 등)보다 토착 품종을 고집하는 문화 때문에 그리스 와인은 수출 시장에서 존재감을 잃었습니다. 이 상황을 바꾼 것이 바로 두 가지 이야기입니다 — 산토리니의 아씨르티코와 한 남자의 집념.
산토리니 아씨르티코 — 화산이 만든 와인
에게 해의 산토리니(Santorini) 섬은 기원전 1,600년경의 화산 폭발로 형성된 칼데라 섬입니다. 섬 전체가 화산 토양(화산재와 부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강수량이 극히 적으며, 강한 바닷바람이 끊임없이 붑니다. 이 혹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씨르티코(Assyrtiko) 포도나무는 흉내 낼 수 없는 개성을 갖습니다.
산토리니의 포도 재배 방식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운 독특함이 있습니다. 포도나무를 수직으로 세우지 않고 바닥에 바구니(쿨루라, kouloura) 형태로 둥글게 구부려 심습니다. 이것은 강풍으로부터 포도송이를 보호하고, 건조한 섬에서 수분을 보존하기 위한 수천 년의 지혜입니다. 일부 포도나무는 수령이 100년을 넘는 노목(老木)으로, 뿌리가 화산암 깊숙이 박혀 있습니다.
이렇게 자란 아씨르티코 와인은 레몬, 자몽 같은 날카로운 산미와 뚜렷한 미네랄 — 화산 토양의 소금기와 부석 냄새 — 이 인상적입니다. 드라이하고 산도가 높아 장기 숙성도 가능합니다. 국제 와인 평론가들이 아씨르티코를 리슬링, 샤르도네와 함께 세계 최고의 화이트 품종 중 하나로 꼽기 시작하면서 산토리니 와인의 가치는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에반겔로스 게루바실리우 — 잊혀진 품종을 혼자 되살린 남자
그리스 북부 에파노미(Epanomi) 마을 출신의 에반겔로스 게루바실리우(Evangelos Gerovassiliou)는 1970년대 프랑스 보르도에서 와인양조학을 공부한 후 그리스로 돌아왔습니다. 그가 그리스 와인 역사에 남긴 업적은 단 하나의 결정으로 시작됩니다 — 그리스 토착 품종 말라구지아(Malagousia)를 되살리는 것.
말라구지아는 한때 그리스 전역에 널리 재배되던 품종이었지만, 20세기 중반 국제화 열풍 속에서 농부들이 수익성 있는 국제 품종으로 교체하면서 거의 멸종 위기에 처했습니다. 1970년대 말, 게루바실리우가 그리스 전역을 뒤지며 찾아낸 말라구지아 포도나무는 단 몇 그루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이 포도나무의 가지를 채취해 자신의 농장에 심고, 수십 년에 걸쳐 번식시켰습니다.
1990년대, 게루바실리우가 말라구지아로 만든 와인이 세상에 나왔을 때 그리스 와인 세계는 경악했습니다. 재스민, 장미, 복숭아 같은 화려한 꽃향기와 풍부한 과실미 — 그리스에서 이런 화이트 와인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게루바실리우는 이 와인으로 그리스 와인의 가능성을 세계에 증명했고, 오늘날 말라구지아는 그리스의 대표 화이트 품종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크티마 게루바실리우(Ktima Gerovassiliou)는 오늘날 그리스 최고의 와이너리 중 하나입니다. 그의 와이너리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코르크스크루 컬렉션이 있으며, 와이너리 자체가 관광지가 됐습니다. 에반겔로스 게루바실리우는 와인 업계의 '인디아나 존스'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리스의 다른 위대한 품종들
아씨르티코와 말라구지아 외에도 그리스에는 위대한 토착 품종들이 있습니다. 크시노마브로(Xinomavro)는 그리스 북부 나우사(Naoussa)에서 나오는 레드 품종으로, 높은 산도와 강한 타닌이 있어 '그리스의 바롤로'라는 별명을 가집니다. 아기오르기티코(Agiorgitiko)는 네메아(Nemea) 지역에서 나오는 부드럽고 과실미 풍부한 레드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수출되는 그리스 레드 품종입니다.
신이 마신 술에서 농부들이 버린 품종을 구해낸 한 남자의 집념까지. 그리스 와인은 3,000년의 역사와 한 사람의 열정이 함께 빚은 작품입니다.
🍽 페어링 추천
산토리니 아씨르티코는 해산물과 최고의 페어링을 이룹니다. 그리스에서는 문어 요리, 생굴과 함께 즐깁니다. 한식으로는 해물파전, 굴전, 참치회와 탁월한 조화를 이룹니다. 말라구지아의 화려한 꽃향기는 크림치즈, 연성 치즈, 가벼운 닭고기 요리와 잘 어울립니다. 크시노마브로는 양고기 요리, 버섯 리소토와 페어링하면 좋습니다.